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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왔습니다. 제가 작년 가을에 보우농원을 알았고, 그땐 이미 품절된지 오래였던 사과를 그때부터 지금껏 기다렸으니, 대강 1년 가까이 기다린 셈입니다. 뚜껑을 열었더니, 말 그대로 험악하고 자그마한 사과들이 빽빽히 놓여있네요. 이리저리 들여다 보니 탄성도 나고 웃음도 납니다. 귀여워서요. 험악하다고 말만 듣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건 꽤 다르구나 느낍니다. 정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과를 몇개 물로 대강 씻어서 베어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후훗. 그렇게 맛있지가 않습니다. 좀 밋밋합니다. 아이구 이런. 남들은 다 맛있다는데 난 왜 아닐까. 생각을 좀 해보니...... 제가 원래 사과를 즐기는 편이 아닙니다. 새콤달콤한 홍옥만 예외죠. 새콤과 달콤에 환장하는 저에겐, 이렇게 풋 맛과 떫은 맛까지 나고, 신듯 단듯 하긴 하지만 강렬한 맛은 나지 않는 사과는 안 맞는 거죠. 다만 씨의 맛만큼은 정말 대단합니다. 향과 맛이 독특하고 강합니다. 작년에 저농약 홍옥이며 부사를 씨까지 많이 먹었지만 이렇게 강한 맛이 난 적은 없었죠. 식물의 핵심이 바로 씨이니 역시 제대로 큰 놈이 다르구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일은 어쨌든 과육맛이 좋아야지 씨맛만 좋아서 될 일은 아닌데... 내가 나도 모르게 보우사과의 맛이 천상의 맛이라도 될줄 기대했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과를 씹으며 '사과야, 너 맛이 그냥 그렇구나'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상자속의 울긋불긋하고 멍들고 때탄 사과들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는데.... 문득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가 있었으니, 그것이 '생존' 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사과들의 '생존'의 몸부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들의 무분별한 품종개량으로, 전세계적으로 유기농 재배가 가장 어려운 품목이 되어버린 가여운 사과. 그렇게 허약해져버린 몸을 이끌고 한번 살아보겠다고, 병원 안 가고 주사 안 맞고 제 힘으로 한번 살아보겠다고 기를 쓰고 피땀을 흘리며 버둥버둥거렸을 사과. 그렇게 애를 썼지만 워낙 타고난 기력이 딸리는 탓에, 여기저기 멍들고 생채기나고 흠나고 얼룩지고 토실토실하게 살쪄보지도 못하고 키가 훌쩍 커지지도 못하고 그저 살아남기에만 겨우겨우 성공한, 그저 생존할 수 있게만 된 사과. 인간들의 탐욕스러운 환경파괴로, 날 때부터 면역력을 세상에 빼앗기고 태어나 이 더러운 세상과 힘겹게 싸워가야 하는 아토피 아이들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반들반들 보송보송해야 할 어린 피부가, 뜯기고 갈라지고 진물이 흐르고 아무리 가려워도 긁을 수도 없는 참담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고통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지금도 모진 애를 쓰고 있을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그리하여 살아남은 자, 그 모두는 진정한 승리자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제 보우사과를 먹으며 맛을 음미하지 않습니다. '생존'을 음미합니다. 실로 처절한 싸움을 치러가며 지켜낸 그 강인한 생존의 의지를 받아 마시는 기분으로 사과를 먹습니다. 이런 사과를 주신 송하선생님께 감사드림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 이상, 올해 사과를 당당히 1등으로 주문한 신지연이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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