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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목서 이야기
1971 년 내 나이 26 세 일때 12월 4일 재만이를 낳고 그 다음해 순천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내려 갔는데
그 때가 벗꽃이 만발한 봄이었다. 그 주일 토요일 집에 다니러 오면서 식물원에 들려
12월 겨울에 피는 꽃나무중에서 수명이 긴 나무가 어떤 나무가 있는가 자문을 구하였더니
동목서 라는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남해안 지방에서만 자랄뿐 광주로 올라가면 기온이 차서
살리기가 어렵다고 걱정을 하였다. 사실이 광주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어도 주암을 지나
산을 넘어 순천시 경내로 접어들면 언제 눈이 내렸나는듯 눈이 보이지 않는것으로 보아

광주와 순천만 하여도 기온의 차이가 확연하기는 하였다.
이 동목서가 번식이 지극히 어렵고 그리고 잘 자라지도 않아 출생기념식수로는 마땅치 않다고
식물원 주인이 설명하면서도 그러나 이 동목서를 잘 살리어 키워만 낸다면 기념수로는 최고의 나무이다.
라면서 그 이유가 사철 푸른 나무로 잎이 크지않으면서 윤이나고 나무 스스로가 둥그런 수형을
잘잡아 품위가 있고 11월 중순부터 12월 초순까지 하얀 서리같은 꽃이 내리면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향기가 근동을 휘감는 능력이 있고 나무가 단단하여 잘 부러지지도 않고 수명이 길어
남해안 지방인 부산에서 목포까지의 각 관공서나 학교나 기관단체의 현관앞 대표 조경수가 이 동목서이다.

각 기관의 장이나 조경사 들은 누가 더 크고 잘생긴 동목서를 가지고 있느냐로 끗발을 정 한다면서
이곳 동부 6군의 기관중 유서깊은 학교로 순천여고와 순천고등학교의 경쟁에서 실력도 실력이지만
동목서 서열에서 순천여고가 한수 위라고 동목서 자랑이 볼만하고 나중에 이 나무 잘 자라 임자 만나면
재산도 될거라는 장황한 설명을 듣고 10 년쯤 자란 초기 어려움을 벗어난 제법 큰 동목서를
구입하여 가지고와 양지바른 텃밭 가에 정성으로 심고 재만이를 잘 키우듯 그 출생기념수 또한
재만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정성으로 돌보았다.

나도 집에 들릴때마다 나무를 관심있게 살폈고 그해 겨을을 넘기고 72 년도 봄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이
푸른 색을 유지하며 겨울을 넘겨 주기에 안심하면서 관심에서 멀어져 갔는데 그러저러 세월이 지나면서
잘 자라주었고 언제인지 모르게 꽃도 잘 피워 동내 자랑수로 자랐는데

너무 잘 자라 채소에 빛을 가린다고 어머님이 나무가지들을 잘라버려 기겁을 하고
어머님에게 이 나무의 가치를 설명드린후 그 이후는 그대로 두시기로 약속을 받아 냈었다.

1985년 40 세에 고향에 돌아온후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있었던지 남해안 지방을 지날때마다
지난날의 식물원 주인이 설명하던 대로 어느기관의 동목서가 더 장대한가를 관심있게 살피는데
어느 기관도 나보다 최소한 수십년은 먼저심고 가꾸었을 터인데 훨훨씬 늦게 심은 나의 동목서 보다
더 크고 잘 자란 동목서는 없었다. 30년전에 자랑하던 순천여고나 순천시청의 동목서가
나의 동목서의 절반정도의 수관에 불과하였다.

기온이 한결 낮은 광주의 우리집에서 잘자라준것이 신기하고 모디 자라는 동목서가
우리집에서는 저렇게 장대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 내심으로는 은근한 자랑이기도 하지만
그 이유가 오히려 궁금한 일이었다. 가끔은 내가 허풍을 치기를 누가 저 동목서를 팔라 한다면
흥정의 시작은 최소한 2000 만원으로 시작하여 임자 만나면 3000 만원 짜리이다.
라고 뻥을 치지만 그게 그렇게 과장이 아닌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동내사람들 에게도 관심있게 잘 살아가던 동목서가 1차로 수난을 받은것이 1999 년
마을회관이 2층으로 들어 서면서 동목서가 받아야할 햇볕의 일부를 가리면서 수형이
일그러지기 시작 하였는데 그래도 그런대로 꽃도 잘 피우며 지내오고 있었다.

1999 년부터 시작한 보우농원의 홈페이지가 정말 미미하고 막연하게 시작한 홈페이지가
기대이상으로 저 동목서 자라듯이 제법 볼만하게 자라주니 꼭 필요한것이 냉동이나 냉장창고 이었고
그러한 저장설비가 집안에 있으면 당연히 관리 잘되고 또 내가 편리할 일 이었으나
마땅이 집안에 지을 공간은 동목서가 있는 그 자리 뿐이라 집안에 짓지를 못하고 4~5 년간
망서리가만 하면서 다른 이 들이 지어놓은 냉장창고들을 임대하여 사용하여 왔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채소즙은 가공에서 보관까지가 지금까지의 사과즙이나 배즙과는
사뭇달라 훨씬 높은 쿼리티로 하여야 하기에 긴급상황이 벌어져 부득이 동목서를 다른데로
옮길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긴 생각끝에 선산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동목서를 사랑하셨던
어머님의 발치로 그리고 나도 가야 할 그 자리로 옮기어 더불어 살아가는 자리로
선산 벌성아래로 옮기는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되어 옮기기로 하고 지난 2월 28일 작업을 시작하였다.

우선 큰 일이 집안에 큰 장비는 들어올수가 없고 02 포크레인으로 들어야 하는데
02로 들수있는 최대한 무게가 1.4 톤인데 이게 그보다는 더 무거울것 같아 파기전 수관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흙을 가급적 털어내어 무게를 줄이었는데도 포크레인이 들지를 못해
트럭에 어떻게 어떻게 간신이 실어 빠져 나가는데 평소에 2.5톤 장축 화물차가 들락거리던
우리집을 나무가 상하고 지붕처마를 부수면서 겨우 빠져 나가고 길에 나가니 더 심각한것이
2차선 길을 가득 메워 버리는 문제라 어찌 어찌 큰길을 통과하고 길바닥을 처진 나무가지로
빗자루질 하면서 선산에 도착하여 무난히 잘 심고 임시로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잘 잡아당겨 두고
물주기를 하는데 대략 1톤 정도의 물을 한꺼번에 주어 나무를 완전히 가라앉혀 두었으니 잘 살것같다.

나무가 이사가느라 고생하고 많은 뿌리와 가지가 잘려나가 아프기야 하였겠지만
그래도 사방이 터져 통풍이 좋고 채광이 좋으니 집안보다야 산이 동목서로 보아서는
훨씬더 좋은 환경이 아닐까 생각도 되고 새땅의 토질도 무척 좋아 동물로 치자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간 셈이다.
         
제목: 동목서 이야기

포토에세이


사진가: 송하

등록일: 2007-03-12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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