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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victory.pangari.net/bbs/data/04menu01/1079925441110.jpg [월간 말] 대학이 아니라 지하서클을 다녔다. 글쓴이 황광우 민주노동당 광주남구후보가 월간 '말'지에 기고한 글 결혼은 운동가의 무덤이었나. 1980년 ‘서울의 봄’에서부터 1984년 인천의 경동산업 현장에 들어가기까지 나를 가장 괴롭힌 주제는 ‘운동과 사랑의 모순’이었다. 혁명을 꿈꾸기 시작하던 20대의 젊은이가 버리지 못했던 것은 한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런데 1981년부터 선배들의 결혼식장엘 가보니 “소부르주아적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민중과 함께 살아야 한다”며 그렇게 후배들을 볶아 댔던 선배들이 하나 둘 운동을 포기하고 가족이라는 일상의 보금자리로 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후배들에게 뱉어 놓은 자신의 말을 책임지지 못하는 선배들의 얼굴이 그 당시 나에게는 너무너무 혐오스러웠다. 나는 결혼식장마다 찾아다니며 말과 행동이 다른 선배들을 향해 “내 손에 기관총만 있으면 다 갈겨 죽여버리고 싶다”며 기만당한 후배의 분노를 토로하곤 했다. 나를 울린 결혼식장의 「님을 위한 행진곡」 그런 나에게도 1984년 3월, 결혼식이 찾아왔다. 결혼을 하면서도 운동은 계속한다는 그 풀기 힘든 모순 때문에 몇 년을 시달려 왔던 나는 이 고뇌를 청산해버리기 위해 결혼을 감행했다. 운동을 하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져야 하느냐, 사랑하기 위해 운동을 포기해야 하느냐.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한 고민이었지만 이 고민을 종식시키는 날이 바로 나의 결혼식날이었다. 장인어른은 간첩을 잡아 전향시키는 일에 오랫동안 종사해 오신 분이었다. 그런데도 새내기 사회주의자의 심정을 잘 이해해 주셨다. 아마도 나를 보며 죽어간 남로당원 친구들을 연상하셨던 것 같다. 그 분은 “사회주의자들은 다 좋은데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하다”며 안타까워하시기도 하였다. 장인에게서 최종 허가를 받고 결혼식을 치르던 날. 신부측 자리에는 수많은 검찰 고위인사들이 자리했고, 신랑측 자리에는 2백여 명의 빵잽이 출신들이 자리했다. “신랑 신부 퇴장”을 요청하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느닷없이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순간 결혼식장이 데모장이 되어 버렸다. 1983년 자취방에서 흐느끼며, 숨죽여 부르던 이 노래가 지상으로 튀어나와 결혼식장에서 공공연하게 부르게 된 것이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마지막 대목이 뜨겁게 외쳐질 무렵 내 눈가에는 비장한 다짐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례는 박현채 선생이 맡아 주셨다. 광주 서중을 다니다 소년 빨치산이 되어 지리산에서 싸우다 하산, 서울대 상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여 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과학적 이론을 제공하셨던 선생이 그 많은 검찰 고위인사들 앞에서 이렇게 축사를 하시는 것이었다. “신랑 황광우는 탁월한 이론가요, 천재적인 도바리(수배자를 가리키는 은어)로서….” 민주화운동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늘어놓는 예의 상투적인 주례사 앞에서 나는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맨날 선배들이 준 유인물을 산동네에 뿌리기나 해온 내가 무슨 이론가란 말인가. 문제는 ‘천재적인 도바리’라는 점괘가 이후 10년의 삶을 고정시켜 버렸다는 데 있었다. 돌아가신 선생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그 좋은 결혼식 날에 도바리나 치라고 하셨는지,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고 싶다. 1980년 서울의 봄에 이은 계엄 포고령 수배와 광주학살에 이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수배된 것은 그렇다고 치자. 1986년 4·22 부평역 고공(高空) 시위 주도로 인한 수배에 이어, 1986년 5·3 인천소요사태에 따른 수배, 그리고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과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 준비위원회에 가담한 죄 등으로 인한 수배, 거기에다 『볼세비키 혁명사』니 『노동자의 사상』이니 하는 불온서적을 펴낸 죄 등으로 모두 일곱 번의 수배를 당해 12년 도바리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젊은이의 결혼 생활을 도바리 생활로 내몬, 박현채 선생님은 저승에서라도 일말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닐지…. ‘게을렀던’ 형 황지우 시인 때문에… 1992년, 오랜 지하생활을 접고 공개적인 정치활동으로 노선을 전환한 후, 전국의 여러 곳을 방문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동지들을 만나면서, 나는 무척 당혹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이론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오직 열심히 발로 뛰고 손으로 쓰는 실천가로 생각해 왔는데, 사람들은 나를 조직의 이론가로 우러러 보는 것이었다. ‘깡마르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사람’으로 상상했는데 ‘배는 오겹살이요, 만나면 술부터 찾는 낭만가’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나이 여섯 살에 끼니를 굶으며 살았다. 허구한 날 밀가루죽을 먹었고, 어쩌다 쌀밥이 나오면 형들이 내 밥을 빼앗아 먹어버렸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집으로 쫓겨가야 했다. 부잣집 아이들 도시락에 얹혀 있는 계란 프라이가 부러웠고, 급식비를 내는 아이들에게만 주는 된장국 냄새를 고통스럽게 참아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부잣집 아이들 엄마의 치맛바람에 휘둘려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와야 할 우등상을 다른 아이에게 주는 모습을 힘없이 목격해야 했다.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폐병과 싸우다 돌아가셨다. 우리에게 남겨준 재산은 낡은 금성 트랜지스터 라디오 한 대뿐이었다. 내가 책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게 된 것은 형인 황지우 시인 때문일지도 모른다. 형은 무척 게으른 사람이었다. 형과 나는 신림동에서 지척지간에 살았다.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형의 집은 공부하는 집이 아니라 술집이요, 하숙집이었다. 형은 자기가 해야 할 대학원 번역 숙제를 들고 와서 “광우야, 이번 한 번만 도와 주라.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며 거부할 수 없는 권위적 목소리로 그 어려운 미학 원서를 나에게 맡기고 가는 것이었다. 헤겔에서 사르트르까지, 후설에서 메를리퐁티까지 도대체 듣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의 글을 번역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피를 말리는 일이었다. 그 고통스러운 번역 일을 하루 내내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입에서 욕이 나오려고 했다. 형과 아우 사이에 이어진 정이 무엇이라고 그 봉건적 관계를 배신하지 못해 다시 번역 일을 맡고, 또 맡고. 그렇게 해서 영어 논문을 번역하게 된 것이 열 손가락으로도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 같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 교수의 강의를 들은 것은 모두 여섯 달도 되지 않았으나, 여느 사람 못지않게 영어 원서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형의 게으름이 낳은 예기치 못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었을까. “학생운동의 배후에 남지 말고 현장으로 들어가!” 이후 노동운동을 하면서 후회했던 일이 세 가지 있다. 하나는 여고 교사로 일하던 아내의 직장을 내가 나서서 때려 치우게 한 것이다. 전주의 모 여고에서 성실하게 교직 생활을 하고 있었고, 밤이면 야학을 하던 아내였다. 가만히 두었으면 지금쯤 전북 지역에서 열심히 전교조 활동을 하고 있을 사람이었는데, 사표를 쓰도록 강제한 이후 구로동의 어느 섬유공장, 부평의 어느 봉제공장을 떠돌도록 한 것이다. 젊은 날 나는 노동현장에서 버티지 못하는 아내를 왜 그렇게도 섭섭하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학생운동에 관한 것이다. 주대환 선배의 표현 그대로 우리는 서울대를 다녔던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연구회’라고 하는 지하서클을 다녔다. 지금 사이버 노동대학을 주도하고 계시는 김승호 선배, 민청학련 사건 때 사형을 언도받자 “영광입니다”라며 판결문을 비웃어버린 고 김병곤 선배, ‘전국민중연대회의’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석운 선배 등이 다 한국사회연구회를 통해 만난 내가 존경하는 선배들이다. 젊은 날 나에게 사상의 기초를 다져준 ‘사상의 고향’ 한국사회연구회. 1970년대 학생운동을 지배하고 있던 ‘시민적 민주주의 경향’에 반대해 ‘민중적 민주주의 경향’을 학생운동 속에 각인시킨 주역이 한국사회연구회였다고 나는 자부한다. 1970년대 중반 폐허가 된 학생운동의 풀밭에서 반독재 민주학생운동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어 마침내는 박정희 체제의 파탄을 이끌어낸 학생운동의 지도 구심이 바로 한국사회연구회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학생운동의 보장된 지도권을 버리고 인천으로 구로로 달려가 버렸다. 노동현장에 들어오지 않는 후배들에게 나는 “학생 운동의 배후에 남아, 인형극하듯 끈을 달아 후배들을 조종하는 따위의 비겁한 짓들은 빨리 집어치워라”며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다. 이렇게 해서 1980년대 초반 이른바 ‘위장취업자’라는 신조어가 언론에 떠오르기까지 나와 함께 현장에 들어온 멤버들이 1백 명은 족히 넘었던 것 같다. 정말 우리는 학생운동을 우습게 생각했고, 노동운동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학생운동이 갖는 역할과 가능성을 우리는 너무 과소평가했다. 나는 1987년 6월항쟁을 인천에서 맞이했다. 6월 18일인가, 전경들과 대치한 부평역 광장에서 1만여 명이 넘는 대중 앞에서 수배자의 신분으로 인민노련의 창립선언문을 낭독하게 된 것을 나는 개인적으로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후 1987년 7, 8월 대파업이 터져 나오자 우리는 『노동자의 길』이라는 비합법매체를 만들어 부지런히 노동자에게 계급의식을 전달하는 일을 했다. 1988년부터는 『자본론』을 비롯해 『프랑스 혁명 3부작』과 『반듀링론』 등을 조직적으로 학습하면서 노동자들 내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우리들의 사회주의 운동에 전국 각지의 여러 그룹들이 호응해 결국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 준비위원회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대강 1천여 명의 선진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이 결집했던 것 같다. 철창에 갇힌 17세 소년의 통곡과 윤상원 선배 며칠 전 광주교도소에 가서 전남대 병원의 최권종 동지를 면회하고 돌아왔다. 26년 전, 그가 서 있던 그 자리에 나는 17세 소년으로 서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지만, 박정희의 『동아일보』 광고 탄압에 대해 분개했고, 이후 광주일고에서 유신독재 반대 시위를 주모한 탓이었다. 서광주 경찰서의 유치장에서 그 지리한 한 달여를 보내고, 어느 날 새벽 호송차에 실려 광주교도소 문 안으로 실려오는데 봄날 밤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가 참 청아하게 들렸다. 그런데 참으로 악랄하게도 그들은 어린 고등학생인 나를 미결수 사동의 징벌방에 집어넣었다. 좌우로 몸을 돌릴 수도 없는 그야말로 숨이 막히는 0.9평의 징벌방. 아무런 의사소통도 할 수 없던 절대고독의 징벌방에서 나는 한없이 운 적이 있다. 검사가 반성문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서도 ‘애간장을 태우시는 어머님’을 들먹이며, 반성문을 써주라고 압박했다. 나는 무너졌다. 검사에게 반성문을 써주고 돌아온 날 나는 “다시는 반성문 쓰는 짓은 하지 않겠다”며 이불을 둘러쓰고 펑펑 울었다. 1979년 7월 18일이었을까. 출소한 다음 날 나는 망월동으로 달려갔다. 광주에서 공장에 다니면서 들불 야학을 만들고 강학활동을 하다가 하늘이 불러 먼저 간 고 박기순 누이의 묘를 찾은 것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게 했던 영혼결혼식의 신랑 윤상원 선배와 나는, 영혼 결혼식의 신부 박기순 누이의 묘를 그렇게 찾아갔다. 1년 후 자신도 저승으로 올라갈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윤상원 선배와 나는, 그날, 그 묘 앞에서 소주 한 통을 다 비웠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시원하게 뚫린 길이지만 당시엔 가르마처럼 구부정한 길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거의 한 시간 동안 망월동 길을 걸었다. 이후 나는 형을 볼 수 없었다. 1980년 5월 역사를 지키기 위해 도청에서 산화한 윤상원 선배는 ‘민중해방의 지하대장군’이 되어 오늘도 내가 가는 길을 굽어보고 있을지 모른다. 2001년 183호 월간 말-나의 20대(9) 민주노동당 황광우 중앙연수원장 아무리 슬프거나 서러워도 막이 오르기 전 흥을 돋구기 위해 익살을 떨어야 하는, 불어오는 바람결에 슬쩍 푸른 하늘을 보며 눈물을 훔쳐야 하는 어릿광대의 생 나는 광대 중에서도 어릿광대 광대가 되기는 아직 멀었다 아니, 영영 광대가 되지 못하고 깊은 밤이면 강가에 와 몰래 우는 어릿광대로 떠돌게 될지도 모른다. - 김인호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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