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도 반찬이고 웃음도 반찬"
'한솥밥' 먹는 광주 금연마을 사랑방
“오매 뭔 홍애가 있당가.”
문지방을 넘어서는 이들마다 한마디씩 한다.
뉘집 아들이 어르신들 드시라고 보내왔다는 말에 모두 “홍애냄새가 난께로 꼭 잔치하는 것맨치로 좋구만”이라고 얼굴에 웃음이 퍼진다
광주시 광산구 연산동 금연마을 ‘연산경로당’.
마을사람들 함께 사랑방에 모여 낮밥을 먹는 시간이다. 들어서는 사람들 수가 늘어날수록 준비하는 이들의 손길도 더 날래고 바빠진다.
“거그 얼릉 마늘 몬자 조사주소.”
“오매 그것 지져서 누구 입에 부칠라고. 두 접시나 포도시 나오것구만. 자네 혼자만 먹을랑가. 입이 몇인디….”
점심시간을 앞두고 경로당이 왁자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밥먹으러 들어서던 할아버지들도 부엌 쪽을 들여다보고 아는 척을 한다.
“오매 글안해도 각시들 같은디 오늘은 벨라도 더 각시들 같구만. 누가 업어가게 생겼네, 허허허.”
그릇에 덩실하니 고봉으로 밥 담아내는 인심처럼 오가는 말들도 ‘인심’이 후하다.
할아버지들이 부엌 쪽에 대고 “우리 동네에 요러게 젊은 각시들이 많어”라고 가리키는 이들은 오륙십세 아주머니들. 그 ‘젊은 각시들’이 날마다 이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점심상을 차려낸다. 농번기 빼고는 거의 일년내 점심때마다 이어지는 일이다. “우리 동네처럼 젊은 사람들이 잘 하는 디가 없어”라고 어르신들이 입을 모을 만 하다.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들끼리 모여 낮밥을 해먹는 다른 마을의 ‘정답고도 짠한’풍경과 금연마을의 낮밥 풍경이 다른 대목이다. 방에 삼삼오오 앉아있던 할머니들이 부엌에 나와 일손을 보태려고 해도 아주머니들은 “삭신 썽썽한 우리가 할 것인께 손에 물묻히지 말고 방에서 노시라”고 ‘단속’을 한다. 한번 하는 밥의 양은 두세 되 정도. 보통 스무 명에서 서른 명 남짓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
“아무래도 모태묵으문 찬 없어도 맛나제. 이야기도 반찬이고 웃음도 반찬이고…”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이 추운 겨울에 밥해먹을라문 고것도 고생인께 같이 묵는 핀이 낫제.”
“아, 우리 동네가 모다 화목허니 산께 항꾸네 밥도 묵고 그라제. 싫은 사람하곤 얼굴 맞대고 밥묵고 싶은 정이 들가니.”
부녀회장 김근순(57)씨는 “고생이라고 생각하면 이 일 못해. 재미라고 생각한께 허제”라고 말한다.
광산구청에서 마을회관마다 지원한 쌀들로 밥을 짓고 반찬은 집에서 기르고 키우는 것들 챙겨 나와서 나눠 먹는다. 호박이야 상추야 마당깊이 묻어둔 독아지에서 이제 막 건져온 싱건지야 상은 금세 빼곡해진다.
“이녁 집에서도 걸게 먹는 날 있고 암치깨나 먹는 날 있대끼 대중없이 먹는디 오늘은 벨라도 찬이 많네.”
잔칫상 앞에 앉은 양 얼굴이 흐뭇한 할아버지들은 술 한 잔을 잊지 않는다.
“맛난 안주들이 지천인디 술을 빼면 서운체.”
어제 누가 술을 사면 미안해서 오늘은 또 딴사람이 사들고 오는 식이다. 장부 없이도 그 셈은 누가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게 틀리지 않는다.
80평생을 한 마을에서 살아온 친구라서 말끝마다 서로 “아 잣것이” “아 쬐깐헌 것이”라고 허물없이 농을 건네는 박시조, 황내주 할아버지는 “맥주같은 고급술은 안 먹어. 막걸리 소주가 역시 최고여”라고 입을 모은다.
술은 딱 ‘반주’ 정도다. 흥청하니 늘어질 것 같던 ‘잔치’는 1시간만에 끝났다. “날마다 묵는 밥인디…한정없이 놀고만 있으문 쓰가니…” “일 안하문 밥이 생기가니…”라며 모두 총총 일어선다. “고상혔네” “대접 잘 받았네”소리도 빠지지 않는다.
사람이 빠져나간 방은 금세 썰렁해진다. “함께 모태면 따뜻해. 사람 훈짐이 최고여”라던 할머니 말이 맞았다. 잠시나마 ‘사람 훈짐’으로 따뜻했던 방이 비워지고 “집에 혼자 있으문 웃을 일 있가니. 모탠께 웃을 일도 생기제”라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식들 다 떠나보내고 이녁들 두 양반만 사는 집으로, 혹은 혼자 사는 집으로 겨울 햇볕 등에 지고 돌아간다.
글=남신희 기자 miru@jeonlado.com
사진=모철홍 기자 momo@jeonla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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