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 친정집같이 편안한 보우농원

제목: 시집 온 사과를 앞에 두고 씁니다.

글쓴이:

느티나무

등록일: 2001-08-08 15:04
조회수: 2754

좀전에 택배를 받았습니다. 눈물나서 못 먹겠습니다.

꼭 마마에 잔뜩 얽은 옛날 학교급우 얼굴을 닮았네요.

거기에 희규님과 보우댁님의 정성과 눈물이 가득 담겨있는 듯해서 눈물납니다.

먹기가 송구스런 모양새입니다.

껍질까지 들라시던 심정을 알 듯합니다.

얇게 껍질을 벗기어 먹으면 맛있는데 껍질마저 아까워서 잼 만들어 먹어야겠습니다.

우리가 무농약 코너에서 사먹는 과일이 농약이 적당히 뿌려진 저농약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알겠습니다.

정말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무농약이라는 말씀 알 듯 합니다.

게시판에 대한민국에 혼자뿐일거라는 희규님 말씀이 이 사과를 보기 전까지는 자만심으로 들렸었습니다.

모양이며 크기도 제각각이고 벌레구멍이며 폭격맞은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한풀 얇은 껍질 밑에는 하얀 속살이 숨겨져있습니다.

맛은 시장 사과와 비교하자면 양계장 닭과 밖에 풀어두고 키운 토종닭을 생각하십시요.

그 사과를 들여다보면서 마당댁이 쓰고 또 지운 심정이며

옛날 어린시절 집마당 과일나무에도 어머니께서 너댓번은 약을 치셨던 일을 자연스레 떠올렸습니다.

보내주신 사과즙이랑 부모들이 딸 시집보내며 바라바리 싸보내는 그런 맘이셨을 듯해서 또 미안허고 미안했습니다.

제가 이거 먹을 자격이 있나해서요.

발벗고 뛰는데 힘은 엄청스리 드는데 별무소득인 현실이 ..

생존의 문제라 안할 수 없는..우리 농업의 현실이..송구스럽고 또 송구스럽습니다.

전 그동안에는 사과쥬스의 뒤에 남는 독기땜에 사과쥬스를 못 먹었는데 이건 정말 맛있습니다.

30개월 된 막내가 사과즙을 바로 앉은 자리에서 두봉지 반을 먹어치우네요..따라다니며 먹여야되는 아이인데..

마침 금요일에 대학 동창들이 모이는데 모니터도 하고 선전도 할랍니다.

아마 사과즙을 더 믿는 마음으로 먹겠지만 사과는 모양때문에 선뜻 도전할 친구는 적으리라 예상됩니다.

우리가 그만큼 예쁜 모양에 익숙해있다는 걸 새삼 떠올렸습니다.

고전 박씨부인 같다고 해야겠습니다..속살은 흽니다. 껍질도 얇습니다. 맛있습니다.

식탁에 오르는 파뿌리 마늘..모든 게 번듯한 모양으로 우리식탁에 오르려면 얼마나 약세례를 받아야하는지 여러번 생각하게 했습니다.

예쁜 과일에 익숙한 일반소비자 분들은 절대 주문하지 마십시요.

쇼크받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분들에게는 사과즙이나 사과식초를 권하고 싶습니다.

정말 무농약일 수 밖에 없겠습니다.

이미 쥬스를 드시고 계신 분들은 사과를 필히 실물로 한번 보셔야 합니다.

일부러 구할래도 구할 수가 없는 모습입니다.

절대적으로 무농약인 걸 드셔야하는 환자나 체질을 바꾸시려는 분들이나 다이어트에 신경쓰시는 분들은 믿고 드실 수 있을 겝니다.

적극 권합니다.

그 상상을 초월하는 못난 모습속에 감춰진 가치를 찾으신다면 주문해 보십시요.

존경스럽습니다.

저같으면 그동안 바가지 수억 깨뜨렸을텐데..몇년을 참고 기다리시는 보우댁님의 인내심과 빈 마음에도 고개 숙입니다.

그나저나 절로 그집 살림이 걱정됩니다.

힘내십시요.

서울 대치동에서 느티나무 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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